자녀가 태블릿 앞에 앉아 AI에게 모르는 문제를 물어봅니다. 답이 곧바로 나오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문제로 넘어갑니다. 문제집이 술술 넘어가는 모습에 마음이 놓입니다. 그런데 몇 주 뒤, 시험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가 게을렀던 것도, 수학머리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지난 2년 사이 전 세계 연구가 그 이유를 꽤 정확하게 밝혀냈습니다. 어머님께서 바로 쓰실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수학에 심장을 달다(수심달) 대표원장 이정환입니다.
집에서 1분 — 우리 아이의 AI 사용, 다섯 가지 신호
본론에 앞서, 자녀의 평소 모습을 떠올리며 체크해 보십시오.
- AI가 준 답을 그대로 옮겨 적고 다음 문제로 넘어간다
- AI 없이 풀어 보라고 하면 유난히 힘들어하거나 싫어한다
- 방금 AI에게 배운 것을 자기 말로 설명하지 못한다
- 한 번 잡으면 길게, 몰아서 쓴다
- AI의 답을 의심하거나 틀렸다고 지적해 본 적이 없다
→ 세 개 이상 해당된다면, 자녀의 AI는 지금 '도구'가 아니라 '목발'로 쓰이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래 연구들이 이런 차이가 왜 생기는지를 보여줍니다.
AI로 공부하면 정말 성적이 오르나요?
절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어떤 AI 사용이냐’에 따라 정반대의 결과가 나옵니다.
고등학생 약 1,000명을 무작위로 나눠 수학 연습을 시킨 실험이 있습니다(Bastani 외, 2025 — 미국 국립과학원회보 게재). 결과가 극적입니다.
- 답을 그대로 받을 수 있는 AI를 쓴 학생들: 연습 성적이 48% 향상됐습니다(그만큼 연습 문제를 더 맞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AI 없이 치른 시험에서는 AI를 아예 쓰지 않은 학생보다 17%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 답은 주지 않고 힌트만 주도록 설계된 AI를 쓴 학생들: 연습 성적이 127% 향상되면서도(두 배 이상 더 맞혔다는 뜻입니다), 시험에서의 손해는 사라졌습니다.
같은 AI 기술입니다. 갈림길은 하나였습니다. 답을 주는 AI는 ‘목발’이 됩니다. 연습 때는 잘 걷는 것처럼 보이지만, 목발을 빼앗기는 순간 — 시험장에는 AI가 없습니다 — 스스로 걷던 아이보다 못 걷게 됩니다.
자녀가 AI로 문제를 술술 푸는 모습, 그것은 실력의 증거가 아닐 수 있습니다.
편하게 배우면 더 오래 남지 않나요?
거꾸로입니다. 편하게 배운 것일수록 빨리 사라진다는 것이 기억 연구의 오래된 결론이고, AI 시대에 다시 확인됐습니다.
대학생 120명을 나눠 한쪽은 AI로, 한쪽은 전통 방식으로 공부하게 한 뒤 45일 후에 예고 없이 시험을 본 실험이 있습니다(Barcaui, 2025). AI로 공부한 집단의 점수는 57.5%, 전통 학습 집단은 68.5%였습니다. 교육 연구 기준으로 큰 격차입니다.
이유는 인지과학이 Cognitive Offloading (인지적 오프로딩)이라 부르는 현상입니다. 머리가 해야 할 수고를 AI가 대신해 주면, 당장은 편합니다. 그러나 장기 기억은 바로 그 ‘수고’ — 스스로 헤매고, 막히고, 다시 떠올리는 과정 — 에서 만들어집니다(Bjork(1994)의 ‘바람직한 어려움’ 이론). 수고를 빼앗기면 기억도 함께 사라집니다.
그래서 이 한 문장을 기억하시면 됩니다. “공부가 편해졌다는 느낌”과 “실제로 배우고 있다”는 다릅니다.
여기서 정직하게 말씀드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실험들은 주로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초등 자녀에게 그대로 실증된 결과는 아직 아닙니다. 다만 전문가들의 판단은 한 방향입니다 — 스스로를 조절하는 힘이 약한 어린 나이일수록, 이런 사용 규칙은 덜 필요한 것이 아니라 더 필요합니다. 습관이 굳기 전이기 때문입니다.
‘힌트만 주는 AI’는 실제로 어떤 모습인가요?
말로만 설명드리면 추상적이니, 실제 화면 하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수심달의 AI 학습 도우미 ‘매티’와 한 학생의 실제 대화입니다. 학생이 삼각비 문제를 풀다 막혀 자신의 풀이 과정을 통째로 보냈습니다. 매티는 답을 알려주는 대신, 잘한 부분을 먼저 짚고 헷갈린 지점에서 질문을 되돌려줍니다.
주목하실 것은 마지막 줄입니다. 오류를 찾아낸 것은 AI가 아니라 학생 본인입니다. 위 실험에서 ‘힌트만 주는 AI’가 시험 손해를 없앤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스스로 찾아낸 것만 시험장까지 따라갑니다.
AI가 다 해주는 시대인데, 기초는 덜 중요해지지 않나요?
많은 분들이 이렇게 물으십니다. 답은 단호하게 반대입니다.
OECD는 2026년 보고서에서 이렇게 결론지었습니다. “교육은 AI 사용 여부와 무관하게, 가치 있는 인간의 지식과 역량 개발을 최우선해야 한다.” 전 세계 고용주들이 꼽은 2030년 가장 중요한 역량 1위도 AI 활용 기술이 아니라 분석적 사고였습니다(WEF, 2025).
이유는 단순합니다. AI가 강해질수록 두 가지 격차가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① AI의 답을 검증할 수 있는 아이와 그대로 받아 적는 아이의 격차 ② AI에게 정확히 질문할 수 있는 아이와 그러지 못하는 아이의 격차
그리고 이 두 능력의 토대가 바로 개념 이해와 문해력, 즉 기초입니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효과가 독립적으로 검증된 AI 학습 사례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유롭게 풀어놓은 AI가 아니라, 어른(교사)이 설계하고 개입하는 구조 안에서만 큰 학습 효과가 났습니다(세계은행 나이지리아 실험, 2024; 영국 수학 플랫폼 무작위 실험, 2025). 도구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도구를 다루는 방식이 아이를 키웁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무엇을 하면 됩니까?
연구들이 수렴하는 실천은 네 가지입니다. 오늘부터 하실 수 있습니다.
① “답 금지, 힌트만” 규칙 — 자녀가 AI에게 질문할 때 첫 문장을 정해 주십시오. “답은 알려주지 말고, 힌트만 줘.” 실험에서 해악을 없앤 바로 그 설계입니다.
② 자기 말로 다시 설명하게 하기 — AI에게 배운 것은 반드시 어머님께 자녀의 말로 설명하게 하십시오. 설명이 막히는 지점이 곧 아직 모르는 지점입니다.
③ AI 없는 시간 확보 — 일주일에 한 번은 AI 없이 스스로 푸는 시간을 고정하십시오. 시험장에는 AI가 없습니다.
④ 짧고 규칙적으로 — 영국에서 2,900명 규모 무작위 실험으로 검증된 사용 패턴은 ‘주 10~15분씩 꾸준히’였습니다. 몰아서 오래 쓰는 자유 사용은 의존을 만듭니다.
특히 중등을 앞둔 초등 고학년이라면, AI 사용 습관이 굳기 전인 지금이 이 규칙을 세울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 자녀에게 이 한 마디를 건네 보십시오.
“방금 그 답, 엄마한테 네 말로 설명해 줄래?”
설명할 수 있으면 자녀의 것이고, 설명하지 못하면 아직 AI의 것입니다.
한 줄 정리 — AI 시대의 실력은 AI를 얼마나 쓰느냐가 아니라, AI를 뗐을 때 무엇이 남느냐로 결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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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AI 사용 습관 하나가 자녀의 한 학기를 바꿉니다.
대표원장 이정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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